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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 인터뷰. 

by Japan, Art It Asia 

​interview_앤드류 맬클(Andrew Maerkle), 아키라 라치(良知暁)

Q. 지금까지 영상 제작이나 철학 비평이라는 영역에서 활동하시다가 최근, 현대 미술적 맥락에서 작품이 주목받는 기회가 늘었지 않나? (참가하는 장)으로 미술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나? 또, 실제적으로 어떻게 접근하고 있나?

난 영상작가로서 경험을 쌓아 왔기 때문에, 미술 영역에 있어서도 나의 방식으로 어프로치해 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다른 전문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지만, 영상도 일단 미디어 재편집이나 다른 여러 가지 이유로 창작에서 많은 선택지를 잃어버린 것이 사실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각각의 전문 영역에서의 활동에 자유롭지 못함을 느끼고 있는 전문가의 대부분이 무슨 이유인지 미술 분야에 모여들고 있다. 아마, 예술이 실험적 시도와 상상력을 기반으로 움직이는 크리에이티브한 노동이란 이유로 그들이 마지막으로 남겨 놓았던 영역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도 영상 작가 이외에 무용수나 건축가, 문학 작가, 철학가, 시인 등, 여러 타이틀로 활동하였지만 결과적으로 현대 미술로 돌아오게 되었고, 모든 전문 영역에서의 사람들과 만나보게 된 계기였다. 물론, 이런 형태의 네트워크만이 지금의 현대 미술의 특징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미술시장이나 현대 미술과 함께 성장하거나, 현대미술에 의해 가속화되고 있는 지역 경제 전체가 원인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은요? 뭐 아무튼, 가장 흥미 깊은 특징 중 하나라고 말하면, 각자 다른 영역에 속해있는 사람들을 광범위한 지역으로부터 하나의 지점으로 집합시키는 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Q. 지금까지의 글을 보면 미술에 대한 양의적, 혹은 비평적 태도도 전해져 왔지 않은가?

우리는 미술 영역에서 글로벌라이제이션이 안고 있는 모순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다. 미술은 무언가를 가능하게 하거나, 자유롭고 가치 있는 능력과 그것까지 연결 지점이 없었던 사람들이나 사건, 사물을 서로 끌어당겨 준다. 반면, 이른바 시장 통합이나 가치 창출, 화폐와 무급노동, 대규모 착취를 배경으로 넓게 오가는 작품에 의해서 글로벌 자본주의의 전제로서도 작용하고 있다. 그것은 글로벌한 미술시장을 일원화하고 같은 시장을 생산해 낸다. 게다가 프리랜서나 인턴이라는 신분을 확장 보급시키며, 미술 노동의 경우에는 사회적 지위를 글로벌화하고 있다. 현재, 세계 미술은 지극히 다극화되어 있고 이미 30년 전부터 뉴욕이나 어딘가의 한 도시에 중심되어 있는 것이 아닌, 중심이 복수화되었기 때문에, 보다 다양해진 동시에 보다 복잡해졌다. 이것은 앞서 말한 사회적 지위에 대한 이야기와 같은 것이다. 어떤 담론적 상황을 진전 시키고, 건설적 프로젝트를 만들기도 하는 명시적이고 암시적인 현대미술이, 무급노동, 비정규노동, 기간제 노동에 의존하고 있는 일은 분명하다.

Q. 미술계와의 일이가 늘어 가고, 어프로치의 변화가 있었나?


물론이다. 행동(실천)도 어프로치도 180도 달라졌다. 이렇게 다이나믹한 미술계에 손을 대고, 변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모든 인간이 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행동에 있어서는 대단히 단순할지 모르지만, 지금까지는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작품을 제작해왔다. 거기에는 스크린이 한 개 있고, 프로젝터가 한대 있다. 그리고 관람객은 관내의 좌석에 앉고, 대강 90분 후? 즉, 영화가 끝나면 자리를 떠난다는 굉장히 알기 쉬운 메커니즘이 있다. 반면, 미술의 경우에는 더 자유롭다. 방법도 다양하고 관람 환경도 한 가지가 아니다. 이런 미술 관람자를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작품은 어떻게든 바뀔 수밖에 없다. 미술관의 관람객을 영화관의 관람자와 변하지 않는다라는 거짓말을 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전반적인 제작 형태도 영상 형식에 갇혀 있지 않고, 페이스도 빨라졌다. 나에게는 감정적인 혼돈이라고 말할 변화가 있어 왔다.

Q. <November(2004)>이나 <Lovely Andrea(2007)>라는 영상 작품에는 여러 레이아웃이 중첩되어 있지 않나? 다수의 인용구와 푸티지를 사용하고, 자신의 성찰을 여러 소재에 중첩시키는 방법, 이런 방법은 철학을 공부한 경험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나? 예를 들어, November에서 국가와 국제사회의 관계 역학을 동반하는 역사적 순간과 자신의 오랜 친구와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가 서로 뒤얽혀 있는 작업이 있었는데?

<November>과<Lovely Andrea>에는 에세이 다큐멘터리 작법을 사용하였다. 에세이 다큐멘터리는 1950년대 후반에 나오지 않았나? 그리고 70년대에 크게 성행하였고, 그 후에는 점점 사라지는 추세였다. 그런데 최근에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이 두 작품은 에세이 다큐멘터리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그 이외의 작품에서는 영화에서 불가능했던 설치(installation)의 구성요소를 포함한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솔직히, 철학이라는 것은 무언가를 지목하는 것인데, 그것이 학술적 형식으로 만날 때마다, 유연성을 잃어버리고 굉장히 보수적으로 느껴져 왔다. 무언가를 목적으로 해도, 학술적 형식은 어쩔 수 없이 19세기에 속박되어 있으니 말이다. 학술적 철학의 대다수가 어떤 식으로 집필되어, 발표되고, 시행되고 있는가? 질서를 가지고 조사해보면 충격적인 결과를 내지 않나? 거의 대부분이 터무니없이 권위주의적이거나 지루하기 짝이 없다. 비표준적 사고 방법이 이런 상황에 변화를 주고 있고, 에세이는 항상 그 자리에 속해 있었다.

Q. <November>에는 포스트 인터내셔널적 세계에 대한 사고가 보인다. 20세기를 돌이켜 생각해보면, 현대미술은 인터내셔널이라는 뉘앙스가 각 지역에 확장되어 가고 있었다. 물론 현재에는 더 양의적이라고 생각한다. 확실히, 그게 서양 철학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일지 모르지만, 그곳에는 놀랄 정도로 오픈되어 있는 측면이 있었다. 예를 들어, 무라야마 토모요시는 1922년 1월에 베를린에 도착해 불과 2달 후, 국제미래파전에 참가하지 않았나? 현재 글로벌화된 아트씬에서도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닌데 말이다.

우리는 아직 완전한 포스트 인터내셔널적 세계를 경험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현대미술계도 글로벌화되어가고 있는 과정이지 않을까? 물론, 현대는 존재하고 있지 않았던 명확한 설정이나 목표에 따른 모종의 윤리를 갖춘 근대적 인터내셔널리즘과는 전혀 다른 전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커뮤니케이션이나 네트워크, 유동성이나 확실한 재정적 동기, 혹은 막연한 전문용어가 있어도, 오늘날 현대미술의 국제화 형태가 근대를 크게 초월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그래도 다른 영역에 비하면 확실히 열려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무튼 미술계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다양성에는 놀랄 정도이며, 역사적 전례도 마찬가지로 양의적인 가치를 안고 있었던 19세기의 움직임, 한나 아렌트가 모브(폭동, 군주)라 칭했던 사람들이 생각난다. 토지는 없고, 외부로 나갈 수밖에 없었던 그들은 군대에 들어가고 타국을 침략하거나 지배, 제국주의, 착취를 만연하는 추악한 세계를 이동해 가는 방랑자가 되었다. 그들은 확장하는 제국주의나 식민지주의의 국가 엘리트와 직접 손을 잡고 있었다. 오늘날은 너 나 할 것 없이 타인을 침해하고 압도하고 앞지르고 식민화하는 일로, 터무니없이 복잡화된 게임 속에서 기호와 관계없이, 또 바라는 일과 상관없이 나 자신도 이 세계를 맹렬하게 이동하고 있는 폭동의 일원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Q. 최근에 많이 이슈화되었던 인턴이나 파업 노동자라는 테마에 관해 쓰고 있지 않나? 세계 미술계 사람들과 노동과는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고, 미술계 사람들이 어떻게 개개인의 노동을 사유화하고 있는가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이런 테마의 작업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내 에세이 집의 “The Wretched of the Screen(스크린에 저주받은 자)라는 타이틀은 프란츠 하논의 “The Wretched of the Earth”(땅에 저주받은 자)를비틀고 있다. “땅에 저주받은 자”에는 룸펜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구절이 있는데, 그들은 조직되지 않고 개개인이 가난하며 어떤 일을 해서든 살아남으려고 한다. 여기서 구체적으로 서술하기 힘들지만, 하논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든 이해하려고 한다. 계급에 속하지 않는 상황, 모든 계급으로 편입될 것을 거부하는 자. 다시 말해, 아렌트가 지칭한 “폭동”과 같은 의미로 또, 현재의 미술인들은 노동자로 조차 보이지 않고 있는 사회적 위치를 보면, 이들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조차 잘 모르겠다. 볼런티어라는 자발적 노예라고 부르면 좋을까? 이것은 글로벌 경제에 일어나는 또 다른 계약 노동의 이야기로 조차 다루기 힘들다.

 

http://www.art-it.asia/u/admin_ed_feat…/eq29Brzv3WmLsbtYuT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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